소면 먹고 급체해서 오랜만에 진짜 너무 아팠어요. 바로 얼마 전에 가는 데는 순서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가나..? 했다니까요. 며칠 동안 죽밖에 못 먹었는데 햇반으로 나온 누룽지죽이 부드럽고 맛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 키위도 후숙되어서 이것도 맛있게 먹었어요. 하지만 역시 민감해진 내장에 아직 키위는 시기상조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인피니트 영화 보러 영등포까지 다녀왔거든요. 타임스퀘어를 인생에서 처음 가봤는데 좋긴 좋더라고요. 근데 영화관과 함께 있는 식당가는 거의 다 일본 가정식? 이런 거라 메뉴가 비슷비슷해서 별로였어요. 지하 식당가까지 내려가서 또 메뉴를 고르는 건 귀찮아서 그냥 먹긴 했는데. 그 와중에 또 별 생각없이 좋아하는 돈까스 카레를 골랐으나 이것 역시 시기상조였다.........
가을비를 배경으로 일상 속에서 펼쳐진 절망스러운 상황을 묘사하는 단편집이에요. 총 4편이 실려 있고 전체적으로 알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두려움을 테마로 쓴 느낌입니다. 막 엄청나게 끔찍하고 징그럽고 이런 호러가 아니라 정말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서움이에요. 그래서 감상도 <검은 집>이나 <천사의 속삭임>처럼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된 느낌보다는 '아이구 저런...' 하게 된달까.
개인적으로는 '아귀의 논'하고 '푸가'가 좋았습니다. '아귀의 논'은 분량은 정말 짧아서 줄거리를 말하기도 좀 어려운데 이야기의 소재부터 그걸 풀어가는 방식과 분량까지 다 결말 하나를 위해 만들어진 그 느낌이 좋았어요. 따지고 보면 무서울 일은 하나도 없고 뭐 귀신이 등장하고 이런 것도 아닌데 내가 결말에서 느낀 그 기분을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평생 느끼겠구나 생각하니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걸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해요.
'푸가'는 호러 소설 작가가 실종되고 편집자가 그가 남긴 미완성 원고를 읽는 형식으로 실종된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짐작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작가는 어릴 때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동을 겪었다고 해요. 그리고 집에는 작가 대신 작가가 이동한 장소와 관련된 것으로 가득했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이러한 이동을 또 겪게 되고 작가는 언젠가 이 일로 죽게 될 것이라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 단편의 좋은 점은 먼저 작가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글로 묘사하는데 순간이동된 장소가 다양해서 질리지도 않고 그 장소마다 서로 다른 공포가 보여서 재미있었어요. 특히 작가가 이동되지 않도록 영능력자를 부르는데 그 후에 꿈을 꾸기 시작하거든요. 이 꿈이 뭐랄까 '호러 작가가 생각한 최고로 스릴 있는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긴장감이 넘쳐요. 저는 기시 유스케의 글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비가 내리는 장면 묘사와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면 묘사거든요. 제목부터 비가 들어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꿈에서 추격당한다..? 안 좋아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또 작가가 점점 미쳐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서 결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데 그 상황 자체가 순간적으로 시각화될 만큼 잘 쓰여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머지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으나 묻혀버린 비운의 가수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와 '고쿠리상'의 또 다른 버전에 관한 이야기예요. 가수 이야기는 약간 '아귀의 논'과 감성은 비슷한데 천재적인 가수의 전기를 쓰게 된 별로 재능이 없는 작가의 대비가 인상적이더라고요. 인간의 욕망은 정말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고쿠리상'은 반드시 네 명이 해야 하는데 주술이 성공하면 한 명은 무조건 사망하지만, 나머지는 절망적인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러시안 룰렛' 형식인 게 특징이거든요. 그래서 초등학생인데도 이미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린 네 명이 이것을 시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한 명은 무조건 죽긴 하지만 대신 고통 없이 죽게 되는데 내가 만약 죽을 병에 걸렸다면 한 번 해볼 만하겠죠? 반대로 인생이 망할 것 같은데 마침 근처에 곧 죽을 사람이 있다면 역시나 해볼 만하겠죠? 보통은 죽을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까. 근데 과연 이게 그런 편리한 주술일까 하는 내용이에요. 이건 발상은 재미있었는데 결말은 너무 설명이 길어진 느낌이라 별로 취향은 아니었어요.
전체적으로 소나기처럼 막 퍼붓는 느낌이 아니라서 그보다는 좀 더 가라앉은 느낌의 호러 소설을 읽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무섭다고 느낀 부분도 '푸가' 외에는 딱히 없었거든요. 대신 '저런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어요. 아, 그리고 서술하면서 날짜가 드러날 때가 있는데 제 생일도 있더라고요. 제 생일이 날짜만 보면 뭔가 소설에 쓰일 만한 숫자 조합은 아닌 느낌인데 이렇게 보니까 좀 재미있었어요.
나카무라 후미노리 <차광>
中村文則 <遮光> 新潮社
거짓된 인간의 진실된 사랑?
사고로 여자 친구를 잃은 허언증 청년이 여자 친구의 손가락을 병 속에 넣고 다니는 이야기예요. 한 줄로 요약하니 미친 사람에 관한 이야기 같은데 그냥 그거 맞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정신인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소설이에요.
주인공은 대학생 남자로 심각한 허언증을 앓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말처럼 그대로 흉내 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재미있게 해준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모든 행위가 꾸며낸 것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니까 또 허언을 하게 되고, 그 허언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또 허언으로 전하는 등 진실된 부분이 전혀 없어요. 심지어 본인은 거짓이라는 자각이 없으니까 그를 이상하게 보는 타인의 시선도 깨닫지 못할 정도거든요. 소설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되니까 진짜 읽는 내내 정신 나갈 것 같더라고요.
그런 주인공이 유일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느낀 사람이 바로 죽은 여자 친구인 미키입니다. 주인공은 미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라낸 손가락 하나를 포르말린 병에 넣어서 항상 갖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는 마치 미키가 살아서 미국 유학을 간 것처럼 거짓말을 해요. 이야기 속에서 미키는 초반에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지만, 어느새 점점 영어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영어로 쓴 글이 남에게 인정받는 수준까지 될 만큼 보람찬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이 묘사가 독자 입장에서는 미키가 이미 죽은 걸 아니까 설정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주인공이 그걸로 위안을 받는 것도 아니까 허언증도 쓸모가 있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손가락이 든 병입니다. 아니 사실 여자 친구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더라도 남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할 거면 그냥 집에 놔두면 되잖아요? 아니면 그냥 뻔뻔하게 이게 내 여자 친구 손가락이다! 나는 이만큼 얘를 사랑해! 하고 나서든가.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은 본인이 허언증이라는 것을 아예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 거예요. 평범한 대학생은 사람의 손가락을 들고 다니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누가 볼까봐 신경 쓰이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확실히 갖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자꾸 행동이 수상해지고 그걸 숨기려고 또 거짓을 말하게 되는 부정적인 연쇄가 일어나는 거예요.
읽다 보면 주인공이 타인의 눈에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왜 허언증이 생겼는지 알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온통 거짓된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여자 친구에 대한 마음마저 거짓일까 하는 거예요. 책에 쓰인 줄거리 보면 순애인가, 광기인가 이렇게 쓰여 있던데 저는 순애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정신인 부분은 하나도 없다고 하긴 했지만 광기는 좀 모자란 거 같아요.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알콩달콩 사랑하고 싶었을 청년만 있을 뿐이지. 여성을 가볍게 대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서 그런 묘사를 읽기 싫은 분에게는 비추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불안한 심리를 읽고 싶은 분에게는 추천할게요. 저는 제 망사 컬렉션에 넣기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괜찮게 읽었어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에 읽을 책은 사토 기와무의 <테스카틀리포카>입니다.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마약과 심장 밀매 범죄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해요. 분량은 길지만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순삭된다고 하던데 과연 명성대로일지 궁금하네요. 평소엔 이런 장르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데 재미있다고 추천받아서 도전해보려고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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