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미 가즈마사 <웃는 마트료시카>
나를 지배하는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을 지배하는 연쇄 작용
먼저 지난 예고에서 총리를 지배하는 사람의 뒤에 종교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예시로 나온 내용에 있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정치계에 입문한 뒤로 승승장구하여 최연소 관방장관까지 오르며 차세대 총리 후보가 된 세이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그가 정치가로 성공하고 자서전을 발표하며, 그 책에 관해 인터뷰하러 온 여성 기자가 세이카라는 인물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내용이 전개돼요.
왜 의심하게 되나면 자서전의 내용은 화제의 인물답게 적당히 재미있게 읽을 만했는데 그중 졸업논문으로 쓴 내용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히틀러의 측근인 '에릭 얀 하누센'이라는 인물과 히틀러의 관계에 대해서 쓴 것인데요, 에릭은 점성술사()로 히틀러에게 각종 예언을 해주고 그것이 들어맞으며 측근으로 발탁되게 됩니다. 괴벨스 같은 유명인사에 비해 마이너한 인물인데 에릭의 특징은 히틀러의 심리를 지배하고 통제하여 조종하려고 했다는 점이에요. 정치인인 세이카가 이것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는 것, 그리고 조종당하는 히틀러에게 약간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에서 기자는 세이카가 혹시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 거죠.
그렇게 세이카의 과거가 펼쳐지는데 초반에는 그의 최측근 비서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스즈키의 이야기가 중심이 돼요.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세이카는 나약하고 주체성이 없는 인물로 보이고, 그와 반대로 스즈키는 서열에서 벗어났으면서 묘하게 무시하지 못할 강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되고 스즈키는 정치가가 꿈이라는 세이카의 모습에서 '나라면 그걸 이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 보란듯이 그를 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게 돼요. 스즈키는 세이카의 연설 원고를 쓸 뿐만 아니라 그때 보여줄 제스처까지 지정하는 등 철저하게 세이카를 통제한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세이카의 어머니 히로코가 등장하게 됩니다.
히로코는 호스티스 출신으로 당시 유명한 정치가와 만나 세이카를 혼자 낳아 기른 사람인데 뛰어난 미모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용하여 세이카 몰래 스즈키와 육체 관계를 맺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스즈키에게 앞으로도 세이카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돼요. 세이카를 통제하는 스즈키를 통제하는 히로코인 듯 보이게 되는 거죠. 근데 이 관계가 대학까지 이어지며 이번에는 세이카의 여자 친구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사람 또한 세이카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인물로 바꾸기 위해 히로코와 스즈키를 배제하려고 해요.
이 모든 일이 초반에 펼쳐지는 놀라운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도대체 누가 세이카를 통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통제한다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세이카란 인물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인지, 또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이들의 관계를 파헤치는 기자와 함께 지켜보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꺼림칙한 느낌이지만 유명한 정치인인 세이카와 그를 이용하려는 인물이 주위에 있는 상황이라 책을 읽는 저마저 문장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같이 보는 불편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내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달까.
결말까지 가면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고 있거든요. 마트료시카 인형이 크기만 다를 뿐 형태는 모두 같은 거잖아요. 아무리 여러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세이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고해도 그건 크기만 다를 뿐 결국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도 들고, 악수하는 법까지 꾸며내야 하는 정치가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을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통제된 인물을 파헤치면서 군데군데 복선도 깔려 있어서 미스터리 요소도 있고, 계속 세이카가 꺼림칙한 인물처럼 묘사되면서 은근히 호러 느낌도 즐길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정치적인 요소에 비해서는 심리적 요소가 더 강한 편이라 통제와 지배적 관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하고요,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치열한 정치 싸움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비추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