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휴와 딱히 상관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휴 기간 동안 사고 싶은 물건이며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정리했거든요. 정말 리스트가 끝이 안 나더라고요... 저의 장점 중에 하나는 이렇게 쓰고 나면 질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거거든요. 마치 봉인해두는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책 리스트는 맨날 여기저기서 보고 나도 읽어야지..! 하고 모아둔 건데 뒤늦게 보니 대체 이 책을 왜 보고 싶다고 생각했나 싶은 것도 꽤 있어서 일기는 아니지만 일기를 읽은 기분이었어요.
참 그리고 이건 일요일에 있었던 일인데, 제가 일요일 오후에 강아지랑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거든요. 그날 햇빛도 따뜻하고 날이 꽤 좋았어요. 그래서 그런가 공원에 나와서 쉬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저희가 마주친 분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정말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라는 느낌에 잘 맞게 어떤 여성분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주 그림 같은 풍경이더라고요. 근데 강아지가 그 앞으로 슥 다가가더니 그 여성분과 눈이 마주치자 똑바로 쳐다보며 쉬를 싸기 시작하는 거예요......하.......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네..................
전자책으로는 절대 낼 수 없다고 하도 광고해서 샀던 책이에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혼외자인 주인공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만난 적도 없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요. 아버지는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로, 그의 친자이자 주인공의 이복 형이 아버지의 유고가 있다면서 주인공에게 그 원고를 찾아달라고 의뢰합니다. 의뢰 이유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교정 일을 했는데 주인공도 그 일을 돕곤 했으니 책과 더 인연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주인공은 생물학적으로만 아버지일 뿐 전혀 모르는 사람의 원고를 찾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와 일하던 편집자 기리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읽고 싶다고 한 그 원고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전체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어 주인공이 원고를 찾기 위해 만난 아버지의 내연녀 세 명의 말을 듣고 그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통해 원고를 남긴 아버지이자 미스터리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완성되어 가는 구성이에요. 그러면서 점점 원고와 가까워지기도 하고요. 당연히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무리 어머니가 혼자 낳아서 키우겠다고 해도 전혀 접촉도 없고 어머니 외에도 사귀던 여자가 저렇게 많다고 하면 혐오감이 들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독자도 같이 마이너스인 상태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저는 꽤 아버지가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봤어요. 사실 객관적으론 정말 쓰레기인데; '소설 속 미스터리 작가'라고 생각하면 흥미로운 느낌이랄까. 반대로 주인공이 저에게 너무 무매력이라 그랬나봐요.
왜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냐면 이 책의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는 '전자책 제작 불가'잖아요. 그럼 읽을 때 '종이책에만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비밀이 주인공과 기리코가 찾는 원고에 있다고 하면 그 원고의 행방을 알 것 같은 내연녀 3인과 죽은 아버지가 더 궁금하지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는 별로 궁금하지 않거든요. 또 당연히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주인공의 어머니 또한 그런 사람인데 주인공과 어머니의 관계도 묘사가 돈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무미건조하다고 해야 하나. 제목대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제일 투명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왜 책이 꼭 종이책이어야 하는지는 거의 비슷하게 접근하긴 했는데 완전히 알진 못했어요. 근데 알고 나니까 구성 자체는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또 구성이 특이한 책이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괜찮은 경험이었어요. 근데 개인적으론 위에 썼다시피 주인공이 너무 매력이 없고, 구성을 살리느라 문장이 좀 약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냥 새로운 경험한 것에 만족할래요.
그나저나 뜬금없이 교고쿠 나쓰히코가 인디자인으로 글 쓴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아니 그 방대한 글을 인디자인으로 쓴다고....? 심지어 그게 그런 이유가 있어......?
인간이 왜 지루함을 느끼는지 여러 철학자의 말을 통해 알아보고 지루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먼저 우리가 여가가 생기고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러셀은 사회의 발달에 따라 설명했어요. 초기 인류는 채집과 수렵 등으로 바쁘게 살았지만, 정착하고 신분 제도가 생기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음악 감상이나 사냥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기는 분위기가 생기게 돼요. 그리고 즐거운 시간이 생기자 지루한 시간도 생기게 됩니다. 또 상류층의 여가 활동이 다른 계급으로 퍼지며 대중 문화가 형성되게 돼요. 이 과정에서 역시 지루함이 퍼지게 되는 거죠. 또 상류층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주로 전환되며 사회가 '일'에 맞춰 움직이는 패턴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잖아요. 그럼 반대로 왜 주말에 쉬어야 할까요? 월요일부터는 출근해야 하니까. 왜 휴가를 휴가철에 가요? 다른 시기에는 일해야 하니까. 이렇게 일에 얽매인 상태를 니체는 '노예'라고 표현했어요. 밈 중에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정직하게 출근하고 있군" 하는 거 있잖아요. 딱 그 상태라고 생각하면 돼요.
하이데거는 이 노예 상태;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을 세 가지로 분석했습니다. 제1형식은 외부 요인으로 그냥 지루한 상태예요. 외출할 때 버스나 지하철 같은 게 바로 안 오니까 다들 멍하니 있든, 핸드폰을 보든 아무튼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특히 하이데거가 살던 시대에는 기차가 주요 수단이고 이게 배차 간격이 기니까 지루함을 말할 때 항상 기차 예시를 들었던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그 다음이 '즐거운데 지루한' 제2형식입니다. 이건 예를 들면 제가 여러분을 만나서 인피니트 얘기를 한다고 해봐요. 그럼 삼겹살 같은 거 구우면서 노래는 이게 좋고 내 최애가 왜 효도강아지고 이런 얘기하면서 신나게 놀겠죠? 그래서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해요. 만나서 이번에는 치킨 먹으면서 또 저희 강아지 얘기를 해요. 당연히 재밌겠죠? 근데 이게 사실은 외출-식사-잡담 같은 사교 활동에서 벌어지는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날 일이 없어요. 그럼 다음 모임도 비슷하겠죠? 물론 그 시간 자체는 여전히 즐겁겠지만 패턴은 이미 익숙하고 지루해요. 마지막 제3형식은 1형식과 비슷한데 이건 그냥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고 지루한 상태예요. 하이데거는 이 상태가 되어야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거냐면 진짜 심심해서 누워 있다가 혹시 그런 생각해본 적 있나요? "난 왜 이러고 누워 있지... 이런 시간이 의미가 있나..." 하는 거요. 전 많은데요() 이 생각이야말로 철학이며 인간의 존재를 파헤치는 것이라고 본 거죠.
저자는 이런 사상들을 소개하면서 한편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이렇게 지루함을 느끼고 특별한 존재라고 했지만, 동물도 충분히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고 또 반대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고 본다면 동물이야말로 더 가치 있는 삶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된다고 지적해요. 그렇다면 인간도 동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결단'을 촉구하는 하이데거의 결론은 자칫하면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하고요. 테러 자체는 사회 체제에 반하는 '자유로운' 행동이니까요. 그리고 꼭 지루하다고 무언가 행동해야 하는지도 고민할 일이라고 하고요.
이렇게 저자는 처음부터 쭉 흐름을 따라가면서 독자가 스스로 지루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철학이 늘 그렇듯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기주도적 삶을 살라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하면서요. 특히 저자는 하이데거의 제2형식이야말로 사실 인간이 사는 삶 자체라고 보았어요. 3형식을 통해 자유를 찾는 것도 좋지만, 2형식이 현실적이라고 한 거죠. 아무튼 저는 이제 누워만 있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시간 낭비? 아니죠, 고유한 나만의 시간 보내는 법 아니겠어요?>_<
다음 모임 예고
다음에 읽을 책은 미키 아키코의 <미네르바의 보복>입니다. 이혼 소송을 의뢰한 대학 선배의 내연녀가 실종되고 부인은 살해된 상황에 소송 의뢰를 받은 변호사가 동료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 것 같아요. 그냥 대학 선배도 죽으면 되는 것 아닐지..? 아무튼 저 보복하는 미네르바가 누구일지가 중요할 것 같네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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