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무 생각없이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아직 안 읽은 책 개수를 셌거든요. 그랬더니 96권이지 뭐예요. 이건 4권 사서 100권 채워야 한다는 계시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중에 한 권 읽으면 100이란 숫자는 깨지겠지만 어쨌든 지금 셌다는 이 시점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네요. 아 여기서 안 읽은 전자책을 포함하면 난리도 아니겠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그리고 전 인피니트 앙콘 티켓팅을 했고요. 센터성애자라 3층으로 예매했는데 마지막즈음 멤버들이 돌아다니는 시간이 되면 서비스 차원에서 사이드로 더 많이 가니까 사실 가까이서 보려면 사이드가 더 낫긴 해요. 그치만 역시 센터는 포기할 수 없으니 어서 분신술 연마하러 가야할 거 같아요. 영종도까지 갈 걸 생각하면 벌써 몸이 힘든 느낌인데 뭐 어떻게든 인천까지만 나와도 집에는 올 수 있지 않을까요ㅠㅠㅠ 막상 가면 재미있을 테니 나머지는 그때의 나에게 맡겨봅니당.
강아지는 요전에 자꾸 등쪽에서 점프를 하길래 한 번 업어준 적이 있거든요. 그러다 내려놓으려고 바닥에 네 발로 기는 자세로 몸을 낮추고 내려가라고 했는데 무슨 마음인진 모르겠지만 제 등 위에 그대로 앉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가 앞으로 쫌 기어갔는데 되게 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이상 버릇 들이면 안 되겠다는 강렬한 느낌이 와서 바로 내려가라고 했어요. 휴... 노예될 뻔했잖아요.
단가를 주로 쓰면서 다양한 작가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 쓴 에세이예요. 주로 살다가 문득 느끼는 무서운 순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단가 시인답게 단가도 몇 가지 소개하면서 이게 왜 무서운지 설명도 해주는데 확실히 작가 에세이라 그런지 문장도 깔끔하고 재미있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진짜로 뭔가 무서운 일이 생긴 건 아닌데 이건 좀..?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대체로 공감할 만한 것들이라 보편적인 감성을 캐치하는 데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철 같은 곳에서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데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그 애매하게 긴장된 순간이라든가, 먹을 걸 구입하고 무심코 원산지 표시를 읽는데 줄줄이 쓰인 어려운 단어들을 보며 평소엔 분명히 그냥 먹던 건데 갑자기 이게 진짜 괜찮은 건가? 한다든가, 상대의 말이 농담인 줄 알고 받아쳤는데 알고 보니 진담이라 당황하는 것 등이 나오거든요. 이게 써놓고 보면 다 별게 아닌데 이상하게 갑자기 신경 쓰이는 날이 있잖아요. 그래서 문장 자체는 깔끔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데 자꾸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공포를 찾게 되더라고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본인이 심사한 단가 중에 무섭다고 느낀 걸 소개하는 거였는데, 내용이 대충 '어느 것을 집을지 젓가락을 헤매는 너를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나'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작가는 이 단가를 해설하며 글의 느낌으로 봐서 가까운 사이인데 굳이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만 본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관계에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고 했는데 뭐랄까 같이 밥 먹는데 저렇게 젓가락 들고 고르는 것도 짜증나는데 괜히 내가 움직이다 같은 음식 집으면 더 기분 나쁘니까 가만히 있는 그 느낌이 넘 소름끼치더라고요. 그러다 상대 젓가락에 닿기라도 하면 좀 더 최악임.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내용을 생각하면 뭔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상상의 여지는 있는 것들인 것 같아요.
제가 무서운 것 중에 많이들 상상할 텐데 쟁반 같은 거 들고 가다 와장창 떨어뜨리는 게 있거든요. 이게 뇌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를 미리 상상하게 해서 대비하게 만드는 거라면서요? 아니 대비는 좋은데 무섭고 긴장해서 진짜 실수하면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또 무서운 건 방에 분명히 혼자 있는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릴 때예요. 원목 가구가 있는 집은 습기나 온도에 따라 나무에서 소리가 날 수 있다고 하고, 때로는 기울어져 있던 물건이 쓰러지면서 나는 소리이기도 한데 매번 벌레일까봐 기겁한다니까요. 하지만 확인했는데 진짜 벌레가 있으면 더욱 큰일이라 확인은 하지 못하는 그 딜레마란ㅠ0ㅠ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도 생활 에세이에 더 가까워서 읽기는 좋았어요. 근데 본인이 겁이 많은 편이라고 밝히긴 했는데 상황 자체는 그냥 '아~ 그거 쫌 무섭긴 해' 정도인데 가끔 문장이 너무 호들갑이 심해서 이렇게 예민해서 세상 어떻게 살지... 작가라서 다행이다... 작가라서 이런가... 하는 생각을 자꾸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ㅋㅋㅋㅋㅋ 그리고 표지를 그린 사람이 삽화도 그렸던데 물론 제목에 맞춰서 일부러 기분 나쁘게 그렸겠지만 너무 혐오스러워요ㅋㅋㅋ큐ㅠㅠㅠㅠ
고객의 돈을 횡령하고 태국으로 도주한 주부, 리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노인의 예금을 관리하다 우연히 마주친 손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더 능력 있는 어른처럼 보이려고 횡령한 돈으로 데이트 비용도 내고 비싼 옷도 사고 여행도 보내주다가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에요. 그와 동시에 리카의 해외 도주를 뉴스로 접한 동창들도 각자 자신의 가정에서 크든 작든 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게 나와요.
사실 리카의 문제는 남편만 똑바로 처신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거든요. 이건 거의 첫 부분에 나오는 거라 딱히 스포일러는 아닐 거 같은데, 결혼 초에 첨엔 남편의 외벌이였는데 그 사소한 곳에서 돈으로 마운팅하는 거 있잖아요. 부부가 외식한 건데 돈으로 생색내고, 그래서 다음엔 부인이 돈 내니까 그 다음에 미묘하게 좀 더 비싼 거 사면서 '너와 나의 수준 차이가 이렇다'라고 어필하는 모습이 진짜 재수없더라고요. 그 외에도 리카가 알바를 시작하고 정직원이 되니까 결정적으로 못된 말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건 아닌데 애매하게 사람 깔보면서 기분 나쁘게 굴어대서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지;; 하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리카가 횡령으로 돈이 많아지고 그 연하 남친에게 하는 행동이 약간 남편하고 닮았어요. 그 와중에 돈이 많아도 연애에서 여자가 을이 되는 그 묘사...... 너무 괴로웠고요.
리카는 처음엔 남의 돈에 손을 대는 것에 그렇게 큰 두려움을 느꼈는데 막상 돈이 손에 들어온 직후 들키지도 않고, 비싼 매장에서 가격표도 보지 않고 돈을 펑펑 쓰면서 느낀 그 해방감을 맛본 뒤로 점점 이렇게 풍족한 생활을 하는 쪽이 원래 나의 삶이라고 착각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진짜 횡령 좀 해본 느낌이더라고요;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인데 독자인 저는 초반에 남편이 어떤 인간인지도 봤고, 남친과의 연애가 어떤지도 봤잖아요. 그 와중에 리카는 당사자라 객관성이 떨어져서 오히려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돈 쓰는 것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걸 보면 마냥 욕하기도 그랬어요. 아마 그래서 뉴스를 본 동창들도 리카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는 식으로 묘사되지 리카를 비난하는 쪽으로 묘사되진 않더라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 돈을 다루는 나의 태도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아사이 료의 <어떻게 해서든 살아있다>입니다. 울적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단편집이에요. 얼마나 울적할지 정말 기대가 되고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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