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호 <폭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의 바탕에 있는 것
행색이 초라한 남자, 스즈키가 경범죄로 잡혀와 폭발을 예고하고, 그것이 현실이 되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 같지만 대화가 이어지며 또 다른 폭발을 암시하는 말이 나오고 점점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도쿄 전체에 큰 혼란이 벌어지게 돼요. 일단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미 잡힌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힌트를 얻는 방식인 점이 특징이라 이 대화에서 재미를 못 느끼면 취향에 안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심문하는 경찰들마다 특징도 있어서 설정 자체는 재미있었는데 범인이 하는 뜬구름잡는 말이 당연히 독자가 헷갈리라고 그렇게 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냥 글자만 읽은 느낌이라 좀 아쉬웠어요. 하지만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탓이니 어쩔 수 없구........
범인과 대화를 나누는 한편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찾아 발로 뛰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부분에선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처음에 스즈키의 심문을 맡았고 그가 언급한 '하세베'라는 경찰의 옛 동료였던 도도로키고, 또 하나는 입지가 좁은 여성 경찰인 사라예요. 하세베란 인물은 성실하고 유능한 경찰이지만 과거에 사건 현장에서 자위 행위를 하는 이상성욕()이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자살한 인물로, 도도로키는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감싸려다 오히려 일을 키우고 만 과거가 있어요.
작품 전체를 통해 '생명에 차등이 있는가'를 묻는데 우리가 말로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고 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 나의 선택이 정말 공정한가 생각하라는 거죠. 또 이런 극단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가 행동할 때 하는 모든 선택 역시 나의 의지로 한 것이므로 결국 완전히 공정해질 수는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세베의 행동은 경찰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그의 다른 면모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도도로키처럼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적으로 감쌀지도 모르죠. 사실 지금도 그래도 경찰이 그런??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닌데 막상 제 일이 되면 충동적으로 "아니 그래도" 하고 감쌀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행동이 다 이성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처럼 심문하는 경찰들도 스즈키에게 속아 화를 내기도 하고, 폭력을 쓰기도 하고, 회유나 이해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개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제삼자가 인권을 무시했다고 비난한 것 또한 쉽겠지만 지금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데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단순하게 비교하면 하세베는 기분은 나쁘지만 굳이 따지면 공연음란죄;겠지만, 경찰의 폭력은 그야말로 폭행죄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왜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것은 그럴 만도 하다고 판단할까. 스즈키는 그런 점을 파고들어 수사를 흔들어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소설의 대부분이 실내에서 대화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서 그런가 같이 당장 폭탄이 팡팡 터지는 긴박한 상황인데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철학적인 면을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기묘한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본문에도 나오는데 당장 큰일이 벌어져 무서운 것과 동시에 뭔가 대단한 일에 휘말렸다는 즐거운 흥분이 뒤섞인 그 모순적인 느낌이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