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세기말st 청춘 미스터리
현재와 2년 전 과거가 번갈아 서술되는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현재 시이나는 대학생이 된 청년으로 옆집에 사는 가와사키라는 남자에게 뜬금없이 서점을 습격해 국어사전을 훔치자는 제안을 받아요. 한편 2년 전 과거에서는 고토미라는 펫숍에서 일하는 여성의 시점으로 부탄인 남자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다발한 동물 연쇄살해사건의 용의자로 보이는 3인조와 마주친 탓에 불안한 날을 보내는 와중에 전 남자친구인 가와사키와 재회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현재의 내가 가와사키라는 엉뚱한 인물 때문에 비일상적인 일에 휘말리게 되고, 과거에서의 나는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애써 회피하면서 역시나 가와사키에게 휘말리고 있어요.
그럼 대체 가와사키는 어떤 인물인가 하면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예요.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인 그는 이런 외모를 타고났으므로 세상 모든 여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방탕한 성생활()을 하며 살지만, 어쨌든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을 갖고 그에 충실하게 사는 인물입니다. 남자친구로서는 당연히 불합격인 태도이므로 그를 싫어하는 고토미가 아니더라도 보통은 그렇게 호감이 갈 인물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 그 묘하게 당당한 태도에 탁월한 외모, 그리고 은근히 현실적인 성격에 미워할 수가 없는 매력이 있었어요.
이야기의 핵심에는 동물 연쇄살해사건이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 등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고 펫숍에서 일하는 고토미는 안 그래도 강아지 한 마리가 없어져서 걱정된 와중에 우연한 기회에 용의자로 보이는 남녀 3인조와 마주치게 돼요. 그런데 확실한 증거는 없기에 의심만 하고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살면서 부탄인 남자친구, 가와사키, 그리고 펫숍 사장 레이코와 교류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랬던 이들이 2년 뒤에 어떻게 변했는가를 외부에서 나타난 대학생 시이나가 관찰하는 식이에요.
일단 오리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데 부탄인이 일본인과 외모가 흡사하지만 그래도 외국인인 건 변함이 없잖아요. 그걸 오리에 빗대서 표현하더라고요. 부탄에 대한 얘기가 꽤 길게 나오는데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소설 내에서는 가와사키가 더 부탄에 대한 이해가 깊고, 연인인 고토미는 그냥 그 인물 자체를 사랑하는 거라 정작 그 나라에 대해서는 이해가 떨어지는 게 은근히 인상 깊더라고요. 읽으면서 초반엔 사건 진행도 느리고 서점 습격부터 이해가 되는 일이 없어서 대체 뭐임?? 하고 읽다가 결말까지 다 읽으면 제목의 의미와 함께 이사카쌤이 초반부터 복선을 엄청 깔아둔 걸 깨닫고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근데 모든 인물들이 완전히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건 아닌데 약간 오늘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나서 옛날에 나온 책인가? 하고 봤더니 2003년 작품이더라고요. 그래서 세기말은 아닌데 약간 세기말 느낌. 밥 딜런 노래가 계속 나오는 것도 그렇고 대화 방식이나 행동이 뭐랄까 세기말 분위기에 그 시절 유행하던 청춘 시트콤 느낌을 섞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구성 위주로 보는 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이나 복선 까는 것 등만 봐도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 요즘 시대에 맞는 책을 원하시는 분은 좀 안 맞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