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밀렸던 생파도 하고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즐거운 연말이네요(with 감기). 아니 뭐 여러모로 갑갑한 환경이긴 한데 친구랑 노는 건 좋으니까요>_<
다만 최근에 열이 안 내리고 자꾸 기침해서 가열식 가습기를 샀는데 이게 계속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잖아요. 깨어 있을 때는 그냥 규칙적인 백색 소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면서 자꾸 악몽을 꾸는 거예요. 며칠을 악몽에 시달리다가 약간 잠이 깨면서 꿈에서 계속 들리던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서 놀라서 깼는데 그게 가습기 소리였던 거 있죠ㅋㅋㅋ 아니 내 무의식... 너무 약한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정체를 알고 나서는 안심해서인지 악몽은 꾸지 않게 되었어요. 가습 효과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공기는 더 따뜻해져서 좋아요. 근데 이거 전기세 많이 나온다면서요?ㄷㄷㄷ
강아지는 제가 최근 아파서 별로 관리를 못 했더니 애가 회색강아지가 되었고요ㅠ 또 전에는 컴퓨터 책상이 좀 낮아서 의자에 올라오면 강아지가 딱 얼굴을 올려놓기 좋았는데 지금은 높이가 안 맞아서 밑에 베개를 깔아줬더니 아주 그 위에서 안정적으로 잘 자더라고요. 지금도 자고 있고요. 저는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큽.....
요번엔 2024년 마지막 메일이라 남들 다 하는 결산을 넣어봤어요. 그럼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_<
표제작 <아내는 잊지 않는다>를 포함하여 일상의 쎄한 순간을 담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서술자는 가족의 뭔가 수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일이 발생하면서 진상이 밝혀지는 식이에요. 표제작으로 설명해보면 주인공 여성은 현재 남편과 냉전 중인데 그 이유는 남편의 가방에서 살상도 가능한 무기를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남편은 이혼 경력이 있고 얼마 전 시아버지가 죽으며 전처가 장례식까지 찾아온 것을 우연히 목격한 상태예요. 또 슬슬 아이를 갖지 않겠냐는 말에 남편이 벌컥 화를 낸 것까지 생각하면 이 모든 상황이 각기 다른 일이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남편이 사실은 아직 전처와 좋은 감정을 갖고 있고 주인공이 방해되는 상황이라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잖아요? 그 와중에 남편이 전처를 지키느라 폭력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발생하고.... 하는 얘기예요.
다른 이야기도 엄마가 아픈 사이 언니가 동생에게 유산을 포기하라고 강요한다든가, 유치원에서 별로 친하지 않은 다른 엄마가 갑자기 접근하더니 남편과 친해진다든가, 대학생 아들이 연상의 이혼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며 학교도 그만두겠다고 하는 등 뭔가 일어나는 일 자체가 다 환장스러우면서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일들이라 이것도 의심스럽고 저것도 의심스러워서 인간 불신에 빠질 지경이었어요.
심지어 진상이 밝히지기까지의 과정이 호러에 가까워서 생각보다 꽤 무섭더라고요. 게다가 단편이라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니까 진짜 무서운데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었어요. 그 와중에 자꾸 '이거 쎄한데..' 하고 의심하느라 단편 하나 읽으면 진이 다 빠져서 하루에 한 편씩 읽으니 딱 좋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제 악몽은 가습기와 더불어 이 책 때문인 것 같아요. 한 편 읽을 때마다 놀라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ㅋ
단편의 단점 중에 하나가 내용을 뭐 자세히 말할 수가 없어서 말을 길게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는데 내용이 다 "이게 이렇게 끝난다고?????" 하는 것도 있고 그래도 역시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구나 느끼게 되는 것도 있고 해서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는 관계를 잘 살린 것 같아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이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족이라 같이 극복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다른 작품들도 줄거리만 언뜻 보면 가족 사이에 생긴 문제를 테마로 다룬 게 많더라고요.
아, 내용의 단점을 언급하자면 단편 중에 하나가 히키코모리 아들을 다룬 내용인데 이건 대놓고 범죄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서 좀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전체적인 테마에서 좀 벗어난 느낌이었어요. 그냥 히키코모리 아들의 그 문제만 다뤘어도 될 거 같은데 말이죠. 이 작가의 <어느 마을의>라는 호러 단편집을 읽은 적 있는데 거기서도 범죄자 아들와 그 아들을 챙기는 엄마를 다루는 방식이 좀 이상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었거든요. 이게 사실 힘이나 체격면에서 마음만 먹으면 엄마를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존재란 걸 생각하면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 좀 쎄한? 여기서도 쎄믈리에 되는 건가요??? 아무튼 제 개인적인 껄끄러움은 차치하고 단편 자체가 이질적인 건 읽어본 분이라면 다 동의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스릴 있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4년 결산
올해는 뉴스레터에 도전하면서 나름 원서 읽기 챌린지를 한 셈인데 구독자는 여전히 제 귀여운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아무튼 목적만 생각하면 꽤 만족스러워요. 어쨌든 마감일이 있으니까 뭐라도 좀 더 읽게 되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올해의 책은 여기서 제가 겐시카 마미타로의 <지옥>을 안 꺼내면 양심 없는 일이겠죠?ㅋㅋㅋㅋㅋ 남의 인생을 우습게 여기면서 자신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을 해학적인 문체로 잘 살린 작품이었습니다.
문장이 좋았던 책은 치하야 아카네의 <투명한 밤의 향기>였습니다. 냄새로 세상을 보는 남자를 눈으로 보는 여자의 안타까움과 그 모습까지 소유하고 싶은 남자의 어긋나는 듯 어울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에요.
분위기가 좋은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였어요.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무작정 리스본으로 떠난 주인공이 한 남자의 일생을 추적하며 점점 그를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이방인인 그 느낌이 좋았어요. 요즘 시위 현장에 등장하기도 하는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라는 문장으로도 화제가 된 그 작품입니다.
결말이 좋은 책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모순된 제목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검열된 세상에서 묵묵하게 책을 지키려던 남자의 그 마지막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외에도 <정욕>이랑 <헌치백> <향모를 땋으며>도 올해 읽은 인상적인 책이에요. 대체로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네요. 그리고 뭔가 현실과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어떤 책을 만나게 될지 벌써 기대돼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이사카 고타로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입니다. 번역본이 나오면서 '아히루와 카모'가 '집오리와 들오리'로 라임을 맞춰서 넘 귀여운 제목이 된 거 같아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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