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미즈에 <우연히 만난 샌드위치>
제목은 느낌적으로는 '운명적'인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공원이 보이는 위치에 작은 샌드위치 가게 '피크닉 바스켓'을 운영하는 자매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언니가 샌드위치를 만들고 동생이 음료와 계산을 맡는 식이에요. 언니는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흔한 것이어도 빵 사이에 끼운 것만으로도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달걀 프라이를 넣은 샌드위치나 햄 양배추 볶음 샌드위치, 고로케 샌드위치 같은 보통은 반찬으로 먹을 법한 샌드위치를 맛있게 만드는 사람이래요.
이야기는 대체로 동생의 시선에서 그런 남들에게 특별하지만 추억의 맛이 담긴 샌드위치를 만드는 언니와 이곳에 빵을 납품하는 잘생긴 빵가게 사장, 자유로운 영혼인 그림책 작가 등과 교류하며 샌드위치를 사는 손님들을 관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게는 언니가 혼자 하다가 최근에 사정 때문에 직장을 잃은 동생이 언니의 요청에 가게를 도우러 온 형태라 동생은 아직 모든 게 낯선 상태인 거죠. 그래서 열심히 해보려고 의욕을 보이기도 하고, 또 괜히 언니를 방해하는 게 아닌지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아직 완전히 적응을 못한 상태인 걸 감안하고 보면 동생의 행동이 귀여워 보이는데 아무래도 속마음을 그대로 묘사하다 보니까 가끔 그런 건 생각만 하지 말고 대화를 하는 게 어떨까... 싶을 때 좀 답답하더라고요ㅋㅋㅋ
제일 중요한 샌드위치는 각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등장하는데 위에 언급한 재료만 봐도 알겠지만 맛은 아마 집에서 만드는 그런 느낌인데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을 찾은 손님은 어떤 계기로 자매에게 자신의 사정을 밝히게 되고, 그 추억이 담긴 음식이 샌드위치로 재탄생하여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엄마의 맛이라든가 생전에 남편이 잘 만들던 요리, 이해할 수 없던 아빠의 행동 등등이 나와요. 전체적으로 에피소드가 마냥 밝지는 않더라고요. 아니 가게는 귀여운 샌드위치 가게면서..!
아무튼 맛 묘사만 보면 저번에 읽은 지비에 레스토랑 얘기보다는 좀 나았어요. 일단 재료가 다 아는 맛이고 빵의 느낌이나 소스 같은 것도 언급이 되는 데다 형태가 샌드위치니까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거든요. 근데 이걸 에피소드로 엮는 과정에서 사건이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요. 뭐랄까 인물을 먼저 구성하고 그 인물에게 일어날 법한 사건을 만든 게 아니라 샌드위치가 먼저 있고 거기에 맞춰 쓴 느낌이라고 하면 전달이 될까요? 사실 샌드위치 자체가 엄청 특별한 요리도 아니고, 기존의 샌드위치와 차별점을 만들기도 쉽지 않아서 '조금 다른 추억의 맛'으로 일관된 컨셉을 잡은 건 좋은데 그에 얽힌 사연이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랄까. 시리즈로 두 권이 더 나왔던데 1권에서 주요 인물들의 사정이 다 밝혀졌으니 아마 2권부터는 등장인물 소개도 끝난 상태라 좀 더 관계성이 넓어졌겠죠? 하지만 전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나중에 요런 따뜻한 휴머니즘 드라마 같은 글이 땡기면 그때 또 만나기로 해요.
여담인데 샌드위치 좋아하시나요? 전 좋아요. 안에 양상추 빵빵하게 넣은 것도 아삭아삭 좋긴 한데 제가 턱관절 이슈로 입을 크게 벌릴 수 없어서 편의점 샌드위치 정도의 크기가 제일 좋아요. 집에서 제일 자주 해먹는 건 계란 프라이에 오이랑 햄 넣고 마요네즈 바른 거예요. 뭘 넣든 오이랑 마요네즈는 필수임. 쓰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마요네즈 바른 오이인가 싶긴 하지만 아무튼 읽고 나니 샌드위치가 생각난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