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아쓰히로 <달과 커피>
자기 전에 5분 정도 한 편씩 읽는 컨셉으로 나온 단편집이에요. 각 단편마다 제목대로 어디선가 달밤과 커피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게 특징이고, 대부분의 인물이 고독하게 무언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하거나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약간 환상동화 같은 분위기가 강해요. 혼자 남은 빌라에 살며 세상 끝에 유일하게 남은 셀프빨래방에 다니는 도마뱀 남자라든가, 세상의 모든 것을 훔치는 도둑이라 어느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 자체가 밋밋하게 변해버린 사람 등이 등장하거든요.
결말이 확실하게 나오지 않는 형식이라 몽환적인 느낌이고, 뭐라고 해야 되지 옛날에 그 '파페포포' 시리즈던가 있었잖아요. 그런 좀 남녀의 몽글몽글한 감성도 좀 섞여 있어요. 항상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할머니가 남긴 방대한 이야기를 읽는 남성과 할아버지가 물려준 카페에서 할아버지의 레시피대로 케이크를 만들어 남성에게 대접하는 여성의 만남 뭐 이런 걸로 시작하거든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ㅋㅋ
단편 중에 유일하게 세 번에 걸쳐 같은 배경의 이야기가 등장하니까 이게 제일 대표적인 얘기라고 해도 되겠죠? 산업화로 인해 침식되어 거의 사라질 정도로 작아진 한 마을에 혼자 잉크 공장을 운영하는 남성이 있어요. 근데 그는 또 파란색 잉크밖에 안 만들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하죠. 이런 일에 의미가 있나? 그의 어머니가 고향에서 항상 수확한 빨간 사과를 보내주는데 거기에 쓰인 메시지도 자신이 선물한 만년필과 파란 잉크를 쓴 게 아니라 그냥 볼펜으로 썼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강해져요. 한편 문구점에서 일하는 여성은 파란 잉크에 강하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런 대단한 잉크를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지도에서 간신히 공장이 있는 마을을 찾아가지만 길이 너무 복잡해서 찾을 수가 없어요. 잉크를 만드는 사람에게 대접하려고 커피까지 챙겨왔는데. 그런데 문득 길가에 빨간 사과가 굴러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줄거리만 보면 뭐 별거 없는데 그 매일같이 반복된 일상에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는 점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등은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이게 세 번 나온다고 했잖아요. 첫 번째는 그냥 흠.. 뭔가 신비로운 느낌인걸.. 하고 읽다가 두 번째 단편에 어떤 장면을 보고 갑자기 카페에서 눈물 흘릴 뻔한 사람됐잖아요. 다행히 카페 옆자리에서 너무 열심히 직장동료를 욕하고 있어서 그거 듣고 눈물이 쏙 들어갔지 뭐예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단편은 <스웨터 소매의 작은 구멍>이었습니다. 스웨터를 사려고 멀리 여행을 떠나려던 청년이 3개 역만큼 떨어진 옆동네에서 새로운 스웨터를 사고 보니 이것도 일종의 여행 아닌가? 하고 옆동네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예요. 진짜 여행을 간 것처럼 옆동네에서 갈 만한 장소를 지도로 만들고 카페에서 쉬면서 약간만 낯선 느낌을 즐기거든요. 이건 개인적인 얘긴데 제가 한때 요런 쁘띠 여행을 갔었거든요. 예를 들면 대학로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인근 길음역 이런 곳에 내린다든가 사가정역 이런 거 처음 들어봤다면서 가본다든가. 포인트는 지하철역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요(길치 이슈), 저는 일부러 맛집 이런 것도 검색 안 하고 갔어요. 그냥 적당히 한두 시간 동네 구경하고 대충 쉬다가 돌아오는 거랄까. 그래도 뭔가 기분만은 진짜 엄청난 모험을 한 느낌이에요ㅋㅋㅋㅋ 암튼 확실히 공감할 부분이 있어서 그런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밤이 주는 뭔가 나른하면서 신비로운 이미지와 커피로 위안을 얻는 분에게는 추천하고요, 결말이 확실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에게는 비추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