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자와 요 <더러운 손을 거기에 닦지 마>
일상에서 벌어진 약간 불운한 일을 다루는 단편집이에요.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기분 나쁘고 뒷맛도 좋지 않은 내용들이고요, 단편마다 카테고리가 조금씩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살면서 그럴 때 있잖아요.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냥 빨리 솔직하게 실토했으면 처벌도 가벼웠을 것을 어떻게든 감추고 피하려다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어서 더 큰 문제로 돌아오는. 그런 내용이거든요. 물론 나는 안 그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케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읽으면서 계속 "아니..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라고..! 아직은 수습할 수 있어...!" 하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ㅋㅋㅋㅋ
어떤 식이냐면 학교 교사가 수영장 물을 깜박하고 빼버렸다가 다행히 중간에 발견해서 물은 절반만 빠지고 끝나는 일이 생겨요. 학교 수영장이면 작은 크기는 아니니까 당연히 부주의한 것을 혼나고 어쩌면 변상해야 할 수도 있겠죠. 이 교사도 처음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려고 해요. 근데 검색하니 생각보다 변상할 금액이 큰 것 같기도 하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도 하고, 이미 문제없다고 일지를 내버린 상황이라 정정하기도 힘들자 선택한 길은 아이가 장난친 것으로 꾸며서 다른 곳의 수돗물을 낭비하자()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계속 '그래, 애들이 장난칠 수도 있지' '나 말고 누군가 물낭비를 이미 했을수도 있지' 하는 식으로 자꾸 합리화를 하는 거예요. 근데 신경이 온통 거기에 쏠리니까 자연히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거죠. 그럼 당연히 남의 눈에는 부자연스럽게 보이고 그렇게 망하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되고... 하는 이야기랄까.
그런데 때로는 문제의 원인이 내가 아닐 때도 있어요. 누군가의 불행한 일에 내가 휘말리기도 하고, 우연한 사고로 인해서 오히려 남의 악의를 내가 느끼기도 해요. 뭔가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그런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게 착한 사람에게 대체 왜?" 사람 심리가 나쁜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니까 평범하게 사는 착한 사람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사건이 생기는 것은 좀 불합리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그렇게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을 보여주면서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상황 자체는 타인에 의한 것이라도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 어쩌면 나일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단편인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 진상의 죽음()을 파헤치며 묘사되는 부부의 절절한 사랑이 너무 좋았고요. 저는 이게 제일 좋았어요. 운명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망각'이랑 '매장'이 그 다음으로 좋아요. 망각은 옆집 할아버지가 여름에 에어콘 안 틀고 자다 죽었는데 그 집 전기료 고지서가 우리 집에서 발견되어 혹시 이게 없어서 돈을 못 내서..? 하는 거고, 매장은 영화감독이 간신히 투자를 받아 거물급 중년 배우와 인기 아이돌을 기용해 영화 다 찍어놨는데 중년 배우가 마약을 하고 있어서 영화가 망하게 되자 감독은 그를 붙잡고 추궁하다 실수로 배우를 건물 밑으로 떨어뜨리고 마는데... 하는 거예요.
나머지 두 편도 괜찮으니까 '지금까지 실컷 불행했지만, 진정한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로 끝나는 단편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할게요>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