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나쓰코 <오리>
세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고, 모두 '교체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표제작인 오리의 내용은 이래요. 나는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폭력적인 남동생은 결혼하여 독립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빠의 친구가 사정상 키울 수 없게 된 오리를 맡기게 됩니다. 마당에 오리가 생기자 동네 아이들이 오리를 보러 놀러오고 집에는 활기가 넘치게 돼요. 적적하던 부모님은 아이들을 위해 간식이며 놀거리를 준비하며 즐겁게 보내지만, 어느 날 오리가 아파 병원에 보내고 얼마 뒤 돌아온 오리는 확연히 크기가 다른 모습이에요.
누가 봐도 먼저 오리는 죽고 새로 산 오리가 온 것이지만, 가족들은 물론 놀러오던 아이들도 마치 새 오리가 전부터 있던 오리인 것처럼 대합니다. 그 꺼림칙한 모습에 기분 나쁜 건 오직 독자뿐이에요. 이 모든 걸 관찰하는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거든요. 그런데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어느새 오리보다 부모님이 준비해주는 간식과 놀거리에 더 치중하게 됩니다. 자연히 그 집을 자신들의 아지트처럼 사용하게 돼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숙제를 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불쑥 들어와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당장 눈앞의 관심사가 좀 더 자신에게 흥미로운 쪽으로 바뀌는 거죠.
여기서 나는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를 아이의 생일상을 차렸는데 정작 딸은 먹지도 못하면서 반발도 안 하고,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되는데도 태연하고, 오리를 아이들에게서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모님과 아이들의 관심사가 차례로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어요. 그와중에 오리가 아픈 증상의 원인을 알아보고 자격증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걸 보면 영향을 안 받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종일관 차분하게 서술되니까 그 차이가 불편하고 거슬리면서 자연스럽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생각하면서 읽게 돼요. 곳곳에 암시하는 부분이 담겨 있어서 분량은 짧은데 생각보다는 읽는 데 시간이 걸려요.
나머지 단편은 은근히 연결되는 내용인데 하나는 여자아이의 시점에서 나이가 들며 점차 늙어가는 할머니를 관찰하는 거고, 또 하나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싱글맘인 엄마가 일하러 간 동안 여동생을 챙기면서 저 할머니와 마주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여기서도 당장은 이게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애절하다가도 눈앞에 더 큰 관심사가 나타나면 매정하게 바로 버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는 화자가 다 어린 편이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느낌이었어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할머니 물론 소중한 존재지만 손녀 입장에서는 점점 학교 생활이 바빠지고 할머니는 맨날 보던 사람이니까 전보다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남자아이에게도 엄마가 없는 동안 친절을 베푸는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지만 당장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에게는 입에 넣은 사탕이 더 중요하잖아요.
전체적으로 벌어지는 사건 자체는 평이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인데 뭔가 서술이 더 나와야 할 것 같은 장면을 그냥 지나치고 있어서 어? 여기서 이렇게 간다고? 하는 식으로 일부러 눈에 거슬리게 구성된 작품이었습니다. 저번 예고에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를 좋아할 사람에겐 추천한다는 리뷰 얘기를 했는데 저는 약간 결이 좀 다르다고 느꼈어요. '이게 아니면 안 돼'하던 감정이 나의 더 큰 이득 앞에선 가차없이 버려지는 것 자체는 비슷한데 저는 보라색 치마에선 은근한 개그를 느꼈고() 오리는 뭐랄까 청소년 소설 감성이 더 강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니 전자의 감성을 원하시는 분이면 비슷하게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고르라면 보라색 치마가 더 재미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