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유스케 <천사의 속삭임>
한 소설가가 아마존 탐사대의 활동을 글로 쓰는 조건을 동행하며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에이즈 환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애인인 주인공에게 메일로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들과 사진가와 함께 탐험에 나섰다가 문제가 생겨서 잠시 고립되게 돼요. 굶주린 그들의 앞에 어떤 원숭이가 마치 잡아먹어도 된다는 듯 겁도 없이 그들에게 다가와서 얌전히 굴자, 탐험대는 무슨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 원숭이를 먹고 다행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돼요. 그런데 그 이후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음울한 성격이었던 소설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정력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고, 성욕이 커지는 등 본능적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 끝에 자살하고 말아요. 이야기는 애인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이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공포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초반에는 주인공이 갑자기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졌지..? 하고 의아해 하고 정신과 의사답게 심리 분석을 해보려고 하는데 사실 누가 봐도 원숭이가 이상하잖아요. 그럼 전염병 아니면 기생충 문제일 텐데 저는 여기서 잠시 예상했던 내용과 달라서 일단 구충제를 하나 먹었고요... 여담이지만 전에 약국에 '구충제 먹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요즘도 구충제 먹냐고 물어보니까 요즘은 고기 때문이 아니라 샐러드 같은 생채소를 많이 먹어서 구충제 먹으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안 먹기도 했던 터라 겸사겸사 이 참에 먹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 기생충 엄청 많이 나와요............
사실 기생충 부분은 빠르게 밝혀지는 것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작품 속에서 소설가 애인 말고도 자살하는 사람이 줄줄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기묘한 형태로 죽는 것을 선택하고 있어요. 발상도 끔찍한데 묘사도 최고임. 아주 징그럽기 짝이 없고요. 그리고 다들 죽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밝고 명랑한 성격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문제는 과연 기생충에 감염되었다고 성격이 바뀌는 것과 자살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겠죠. 작품 내에서는 주인공이 해부를 맡은 의사, 기생충 전문가, 기자 등을 다양하게 만나면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하려고 애써요. 이 과정에서 기시 유스케 특유의 전문 지식 전달도 빼놓을 수 없고요. 신화에 대한 설명부터 기생충 분류와 원숭이 종류까지 골고루 나왔네요. 그 와중에 무능한 정부 체계에 대한 비판까지 빠지질 않고요>_<
아무리 그래도 의사가 혼자 이걸 다 조사하러 다닐 수 있을지 의아할 텐데 배경이 좀 옛날이에요. 아직 플로피 디스크가 존재하던 시절이랍니다. 그래서 사건을 조사하는 것 자체는 요즘 시선으로 보면 좀 어설픈 부분이 있는데 주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공포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 사건의 진상 자체는 그저 징그럽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생충 외에 거미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길고 세세하니까 이쪽에 내성이 없으신 분은 안 읽는 걸 추천할게요. 내용 자체는 묘사가 징그러운 것 빼고는 공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나은 것일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으면서 은근 술술 읽혀서 좋았어요. 그리고 주인공 정말 연애운이 너무 없어서 눈물이..ㅠ0ㅠ
개인적으로는 <이기적 유전자>를 전에 읽어서 그런가 기생충 하.. 진짜 징그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쓰는지 모르지만 진짜 묘사 너무 징그러워서 눈을 질끈 감고 싶었는데 그 행동 양식 자체는 참 DNA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같아서 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중간에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간신히 편의점 알바를 하며 집에서는 포르노에 중독되어 사는 남자가 나오는데 그 남자의 최애가 야겜 히로인()이거든요. 그래서 현실에서 예쁜 여자애도 그 야겜에 나온 캐릭터 이름으로 부르고 혐오스러운 느낌 그 자체예요. 이 남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 정말 인간 사회에서 보면 잔인한 말이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인간인데 그가 마지막쯤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왜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렸는지 아실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