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시오 키로가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우루과이 출신 작가가 쓴 단편집이에요. 아주 제목에 충실하게 사랑+광기+죽음이 세트로 꽉꽉 차 있어요. 여러분 믿음소망사랑 중에 최고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망사.. 망 한 사 랑..! 망한 사랑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합니다>_<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는데 단편이라 길이가 길지 않아서 그냥 시간 날 때 한 편씩 골라 읽기 좋아요. 대체로 다들 무언가에 미쳐 있다는 게 특징이에요. 이런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원동력은 사랑일 때도 있고, 물질일 때도 있어요. 정말 광기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단편이라 내용을 조금만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좀 조심스럽긴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제목에서 이미 알려주고 있잖아요? 정말 이 난리를 치고도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온다는 점에서 약간 허무주의 같은 감성이 느껴지기도 해요.
<사랑의 계절>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단편만 봐도 그게 느껴지는데요, 서로 첫눈에 반해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주인공과 소녀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헤어지게 돼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재회하지만, 과거에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남은 건 인간적인 연민뿐이에요.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을 예고하는 신호가 나타나요. 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듯이 사랑의 계절이 지나면 그 사랑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잘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사랑'이 제일 마음에 든 단편은 <음울한 눈동자>라는 작품이에요. 작가가 개정판을 내며 이 단편을 뺐었다는데 하 정말 작가가 몰알아..! 요 단편은 인피니트의 ' feel so bad'라는 노래 있거든요. 이거 들으면 어떤 느낌인지 딱 올 거예요. 친구가 근사한 여자친구를 사귀고 '나'가 여자친구를 좋아할까봐 미칠 것 같지만 또 친구니까 여자 친구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나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하고 나와 그 여자 친구 둘이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을 표현한 문장이 진짜 전세계 망한 사랑 광고문에 써도 될 정도라니까요.
'광기'가 두드러지는 글은 <목 잘린 닭>이 출판사에서도 광고에 쓸 정도로 유명한 것 같던데 저는 <엘 솔리타리오>가 좋았어요. 보석 세공을 하는 남자의 아내가 있는데 남편이 저렇게 비싼 보석을 매일 다루는데 저 보석이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그 불합리함에 미쳐가게 되거든요. 그런데 결말을 보면 진짜 미친 인간은 남편이었다...... 하는.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과 여자의 탐욕, 그리고 보석과 탐욕 모두를 다루는 남자의 선택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넘 좋았어요.
다만 단편 몇 개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작품의 분위기를 보면 동물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동물도 크게 보면 이 세상의 일부이고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어떤 삶을 살더라도 결말은 같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뭐 동물의 죽음 이런 내용인 건 차치하고 일단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면서 약간 우화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