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야 아카네 <투명한 밤의 향기>
이치카라는 여성이 독특한 조향사 사쿠를 만나 그의 세상을 관찰하는 형식의 소설이에요. 요즘 아이돌 콘서트 같은 거 하면 그 공연만의 향을 뿌려줘서 기억하게 하는 경우 있잖아요, 그게 인간의 뇌는 냄새를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지나가다 풍기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그걸 먹었던 추억이나 맛이 생각나곤 하잖아요? 이 작품 속의 인물 사쿠는 바로 그런 향을 재현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다만 그는 향의 재현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뛰어난데 그것은 그가 세상 모든 것을 향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지금까지 먹고, 입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물건을 이용하고, 움직이며 몸에 배었을 그 모든 것을 알아내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반대로 그것을 조합해서 한 사람의 향을 재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개처럼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하는 인물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타인의 성관계 여부나 생리 주기 파악() 등으로 인한 냄새의 변화까지 태연하게 입밖으로 내기 때문에 종종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요.
주인공인 이치카는 그런 사쿠가 거주하는 저택에서 청소와 식사 등을 맡아서 하게 되는데 사쿠는 그런 이치카에게서도 자신이 원하는 냄새가 나도록 샴푸부터 화장품, 세제까지 다 본인이 조합한 것만 쓰게 하는 치밀한 변태성을 보여요. 그런데 이치카는 현재 삶에 좀 지친 상태라 거짓말까지 냄새로 파악하는 사쿠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오히려 편하게 느끼게 됩니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그냥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사쿠의 소꿉친구인 신조는 물론 이 세상 누구도 사쿠가 보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이치카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치카를 대하는 사쿠에게도 변화가 생겨요.
내용은 에피소드마다 사쿠를 찾아오는 고객의 이야기와 함께 이치카와 사쿠, 그리고 사쿠에게 고객을 소개하는 일을 맡은 탐정 신조, 정원사 겐이 모든 냄새가 통제되는 사쿠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는 고객들도 다들 개성 있어서 죽은 남편의 향이라든가 아름다워지는 향, 살아갈 마음이 생기는 향 등을 주문하러 와요. 이치카는 그런 고객을 대하는 사쿠를 지켜보며 자신의 문제와도 조금씩 마주하게 돼요. 그러다 클라이막스 부분 진짜 아니 거기 문장이 완전 미쳤다니까요! 그래놓고 결말 하.......(좋음) 소꿉친구인 사쿠와 신조는 서로 정반대 성향이라 유일하게 개그 느낌이라 웃기고 무엇보다 겐 씨의 정체가 제일 충격적이었네요ㅋㅋㅋㅋ
일단 향과 관련된 작품답게 문장이 굉장히 향기롭고 예쁘게 쓰여 있어요. 그러면서 인간을 향으로만 판단할 뿐 윤리나 정의 같은 것은 따지지 않는 사쿠의 그 비인간적인 모습이 약간 불안하고 불길하게 묘사되어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그냥 글 자체가 읽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또 이 작품의 이치카는 사쿠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결국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치카가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때는 색깔 같은 시각적인 묘사를 쓰는 게 눈에 띄었어요. 더불어 집안일을 하느라 음식 묘사가 많아서 시각과 후각, 미각까지 다 만족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결말도 마음에 들어서 후속작도 다음에 읽어보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