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모임에 다녀왔어요. 새로운 분도 만나고 재미있었어요. 사실 이날 점심에 곱창볶음 먹고 속이 좀 쓰렸는데 맥주 마시고 나았어요. 오랜만에 꼬치 넘나 맛있었고요. 다음엔 감자탕>_< 진짜 몇 년 만에 먹는 거라 너무 기대됩니당.
강아지는 병원에서 발톱 깎다가 피가 났지 뭐예요. 근데 병원까지 가는 길부터 무섭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막상 자기 발에서 피가 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그 모습... 그냥 지금까지 무서워하던 건 엄살이었던 것 잘 보았고요. 그래도 계속 긴장해서 그런가 집에 오자마자 간식 하나 먹고 바로 잠든 걸 보니 또 짠해지는 게 그냥 앞으로도 호구로 살 운명인가봐요'ㅅ)
우에다 사유리 <화룡의 궁>
上田早夕里 <華竜の宮> 早川書房
이거 진짜 설정만 한바가지라 제대로 말하려면 진짜 앞에 놔두고 강의해야 해서 최대한 간단하게 써볼게요. 25세기에 갑작스러운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 대부분이 잠긴 상태에 인간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지와 바다에서 각자 살게 됩니다. 주인공인 아오즈미는 정의로운 성격 탓에 좌천을 거듭한 일본계 외교관이에요. 군도로 전락한 일본은 아시아 연합에도 못 끼고() 서구권 연합에 일부 내정간섭을 받는 형태로 끼게 되는데 처음엔 이렇게 탈아입구를? 하고 좀 웃기긴 했어요ㅋㅋㅋ 육상민은 인공지성체를 통해 능력을 보조받으며 과학 기술과 육지의 자원으로 부와 권력을 독식하는 형태인데, 시간이 지나 세상이 안정되며 해상민의 수가 늘기 시작하자 이들에게서 세금을 뜯기 위해() 국적 취득을 강요하려고 나서고, 이때 일본 정부는 많은 해상민을 이끄는 무리의 리더 쓰키소메를 주목하게 됩니다. 아오즈미는 그런 쓰키소메와 교섭을 하는 역할을 맡게 돼요.
그럼 해상민은 무엇이냐면, 극도로 좁아진 육지에 모든 인간이 다 살 수 없게 되니까 유독한 바다에 적합한 육체로 개조하여 쫓겨난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출산 방식까지 달라지는데 그것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인간 아이와 물고기, 이렇게 둘을 낳는 것입니다. 아이는 키우고 물고기는 바다에 방생하는데 만약 물고기가 죽지 않고 무사히 성장하면 자신과 함께 태어난 아이를 찾아오고 아이 역시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둘은 '친구'가 되어서 노래로 연결된 사이가 돼요. 그리고 성장한 물고기는 커다란 어선이 되어 자신의 몸 내부에 인간을 수용할 공간을 형성해서 함께 생활하는 거예요. 모든 물고기가 다 어선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해상민은 어선의 소유자와 함께 협력하여 지내는 형식이에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치고 다니는 거예요. 이제 와서 국민이 되어 세금을 내라고 하면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죠.
쓰키소메는 해상민들을 위한 조건을 내세우며 남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아오즈미와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돼요. 하지만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위에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의 공적이 더 중요하기에 사사건건 방해만 하고, 설상가상으로 50년 뒤에 다시 한번 재앙이 일어날 것임이 밝혀집니다. 이게 제목에 나온 '화룡'인데 땅에서 마그마가 기둥 형태로 곳곳에서 분출하여 화재로 인해 육지가 다 타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가 재로 뒤덮여 빙하기가 올 예정이에요. 이 작품은 그런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서로 협력하여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존재가 아오즈미의 인공지성체 마키예요. 마키는 아오즈미는 물론 다양한 존재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생명이 있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요. 또 살기 위해선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보여줘요. 일종의 인간 찬가에 가까운 소설인 것 같아요.
세계관이 방대해서 그런가 같은 설정으로 몇 권 더 나왔더라고요. 다른 책에선 아오즈미가 외교관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일하는 부분도 있고, 해상민에 대한 것도 있는 것 같았어요. 이 책에서는 아오즈미가 앞으로 다른 일을 하겠다고 예고만 하고 내용은 건너뛴 다음에 바로 결말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이 세계의 경과를 보고 싶으면 일단 이것만 읽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아님 말고() 아무튼 요즘 해수면 상승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시대에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약간 눈물 나는 장면도 있고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마루야 사이이치 <조릿대 베개>
마루야 사이이치 <조릿대 베개> 김명순 옮김 톰캣
선물받은 책이에요. 일제시대 때 징병 기피자가 되어 도망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교대로 보여주며 자신의 나라에서 국가로부터 도망치던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이거는 사실 저번에 선물해준 친구를 만나서 약간 감상을 말했는데, 사실 우리가 지배당한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 하나 도망쳤다고 그게... 뭐? 같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거든요ㅋㅋㅋ 아니 뭐 국가를 상대로 저항 운동을 펼친 것도 아니고 본인도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서 식민지 꿀빨고 성장했을 거면서 조선 사람 좀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뭐 달라지나 싶은ㅋㅋㅋㅋ
그 부분을 일단 빼고 작품에만 집중하면 이 작품은 패전 이후 도쿄로 돌아와 대학교 교직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신이 징병 기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아닐까 자꾸 불안해하며 사는 주인공에게 옛날 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돼요. 도쿄 출신의 의사 아들에서 전쟁이 싫다는 이유 하나로 순식간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신분을 속이고 전국 곳곳을 떠돌며 모래 화가로 근근이 먹고 살다가 거기서 한 여자를 만나고 사귀게 돼요. 이 상황에 연애를 해? 싶기 하지만 뭐 아무튼 둘은 패전 후 주인공이 도망칠 이유가 없게 되자 자연히 헤어지게 되는데 사망한 옛날 애인이 바로 이 사람이에요. 이야기는 이 여성의 사망을 계기로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어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묘미는 과거와 현재가 되게 이런 장면에서? 싶을 만큼 빈번하게 교차되면서 주인공이 여전히 불안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 있다고 봐요. 주인공은 과거에 국가의 이득만을 위한 전쟁의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아서 징병을 회피했다면, 현재는 파병을 반대하는 '좌파 감성'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요. 그러면서 작가는 국민 전체를 하나의 기준으로 강제적인 통제를 하려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은 과거나 현재 모두 여성에게 의존하며 자신을 기생충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머니의 죽음이나 동생의 장애도 그렇고 개인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주변을 희생하게 된 것을 자조하는 듯 느껴졌어요. 또 주인공이 자꾸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일종의 피해망상으로 인한 정신 승리를 하는데 이것 역시 징병을 기피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당당해질 수도 없는 모습이 아마 평범한 사람이 국가를 반역했을 때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말이 인상적이라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이해는 되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게 솔직한 감상 같네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치하야 아카네의 <투명한 밤의 향기透明な夜の香り>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향을 만드는 이야기인데 고객의 주문이 좀 특이한 내용이라고 해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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