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강아지는 정해진 루트만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그 길이 공사중이라 산책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거기서 골목 하나만 더 가면 다른 공원이 나오는데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안 간다고 버티더군요... 완전 칸트강아지임. 그리고 저는 요 열흘간 일하는 시늉만 하면서 지냈어요. 이상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기였달까. 하지만 이제 진짜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왔네요... 파이팅>_<
시바타 요시키 <자멸>
柴田よしき <自滅> KADOKAWA
고독한 여성들의 말로를 묘사한 단편집이에요. 어떤 느낌이냐면 뉴스에서 평생을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남편을 살해했는데 계획 살인이라며 형량이 더 높게 나오는 걸 봤을 때의 그 안타까움과 누구한테 화를 내면 좋을지 모르겠는 그 감정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여기에 호러 요소가 첨가되어서 어디에도 정붙일 곳이 없는 나를 위로하는 것은 인간도 아닌 존재일 때도 있고, 또는 스스로 버티지 못해서 광기에 휩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래요.
표제작인 '자멸'은 비밀이 없는 작은 동네 출신인 주인공이 환멸을 느끼고 익명의 다수가 될 수 있는 도쿄에서 살면서 시작돼요.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그냥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을 하지만, 다른 직원에게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퉁명하게 대하는 가게 점원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런데 주인공은 아무 항의도 하지 않고 우연히 발견한 한 빌딩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없어졌으면, 죽어버렸으면 하고 빌기만 해요. 이렇게만 보면 주인공의 행동도 답답하고 음습해 보일 거예요. 근데 주인공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거든요. 물론 제목이 자멸인만큼 중간에 몇 번이나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누구나 모든 상황에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럴 바엔 그냥... 그냥 귀신 파티하는 내용이 좋았을 듯ㅠ0ㅠ
개인적으로는 쓰레기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은 프리 저널리스트인데 남편이 결혼할 땐 분명히 일과 병행해도 된다고 했으면서(그걸 허락하는 것도 웃기지만) 막상 결혼하니 집안일 때문에 제대로 일을 못하는 건데 인과관계를 반대로 생각하며 그런 돈도 안 되는 일은 그만두고 집안일이나 하라고 그러거든요. 그런 상황에 어떤 쓰레기집에 사는 여성을 취재해달라는 의뢰를 받아요. 지금까지 아무도 취재를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이상하게 여성이 주인공은 매우 친절하게 맞이하는 거예요. 끔찍하게 더러운 집에서 주인공은 과거에 자신이 버린 물건을 발견해요. 당황하는 주인공에게 여성은 집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하는 내용이거든요. 이런 더러운 여성연대()가 있을까 싶을 만큼 생생한 쓰레기 묘사와 함께 여성이기에 겪는 차별을 생각하게 하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였어요ㅋㅋㅋㅋ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재미있다고 추천받은 책인데 진짜 재미있었어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식물생태학자가 전통에서 배운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여러 식물에 대한 정보, 그리고 과학자로서 전통과 과학의 결합 등 식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에세이예요. 내용도 유용한데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이 너무 예뻐서 그냥 책으로도 읽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최재천 교수님 책에서도 강조되었던 것이 생물의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거든요. 우리는 너무 단일 품종을 한꺼번에 재배하고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다같이 전멸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요. 요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생물이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간접 체험할 수 있어요. 뭔가 대리로 캠프 다녀온 느낌이랄까. 연못물을 정화하는 작업이나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재미있고, 바구니를 짤 때 처음 만난 나무는 베지 않는 관습이라든가 곡식을 거둘 때 일부러 바닥에 흘리면서 가져가 다른 동물도 먹을 수 있게 한다든가 하는 내용이 소재별로 분류되어 읽기도 편하거든요.
또 끊임없는 말살 정책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언어나 삶의 방식을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게 나와서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저도 화가 나는데 정작 저자는 그것보단 이미 있는 것을 지키고 앞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는 걸 더 강조하고 있어서 저도 좀 부정적인 한탄? 같은 것보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부터 실천해볼까 해요. 그나저나 원주민 아이들이 자연에 감사 기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릴 때 캡틴 플래닛 좀 봤다면 벅차오를 내용임. 번역도 향모님, 단풍나무님 이렇게 되어 있어서 좋아요. 우리가 학교에서 밥 먹을 때 이걸 키우신 농부와 어부에게 감사하고 그러니까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하고 이런 거 배우잖아요. 이 책은 식물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어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일정이 좀 빡빡한 관계로 50편의 초단편으로 구성된 마유무라 다쿠의 <조용한 종말静かな終末>입니다. 연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려고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개인 메일로 발행하는 것이라 스팸으로 분류될 수 있으니 메일이 보이지 않으면 스팸함을 확인해주세요.
책에 대한 감상이나 추천 책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메일로 보내주세요. booksowner@soz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