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네카와 고타로 <멸망의 정원>
恒川光太郎 <滅びの園> KADOKAWA / <멸망의 정원> 이규원 옮김 고요한숨
두 가지 세상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삶의 목적과 가치를 묻는 이야기예요. 어느 날 지구 전체를 감싼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고 지상에는 '푸니'라고 명명한 하얀 슬라임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해요. 근데 미지의 존재는 그냥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고, 푸니는 몸에 닿으면 상대도 푸니가 되어 죽고 말아요. 또 이렇게 개채수가 늘어난 푸니는 또 다른 생명을 공격하고 또 죽고..의 반복이에요. 당연히 전 세계는 엄청난 위기에 처하고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게 됩니다.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한 끝에 두 가지가 밝혀집니다. 하나는 푸니에 대한 내성이 강해서 죽지 않고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푸니를 조종까지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미지의 존재'의 핵 주변에 한 인간이 삼켜진 채 그곳에서 보여주는 행복한 환상을 보며 살아가고 있는데 핵을 파괴하려면 그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야기는 이렇게 멸망해가는 지구와 환상의 세계가 대비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생각해보게 돼요.
사실 환상의 세계는 우리가 보기에는 허구니까 지구에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마땅히 핵을 파괴하고 지구를 구하는 게 맞겠죠. 근데 하필 이 세계에 온 남자는 지구에 미련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자신을 속였고 후에도 문제만 일으키고, 회사는 블랙이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만 했어요. 그런데 낯선 세계에 오니까 모든 사람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고, 생활도 편리하고, 사랑하는 가족도 생긴 거예요. 그렇게 지구에서의 기억을 잃은 그의 앞에 무슨 괴물이 나타나 지구가 지금 위기에 처했으니 너의 모든 것을 죽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런 말을 한 괴물을 없애고 가족을 지켜야죠.
하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얌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지구에서는 우연히 푸니를 먹고() 오히려 죽지 않고 푸니와 교감하는 능력을 얻는 세 명의 인물을 보여줘요. 이들은 혼자 죽기 싫은 쓰레기 같은 아버지가 음식에 몰래 푸니를 섞은 것을 먹기도 하고, 능력을 질투한 인간에 의해 억지로 먹기도 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스스로 먹기도 해요.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지녔지만, 사실 이들에게도 세상을 대신해서 나설 이유는 크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비판받을 행동도 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한 일을 한다는 점에서 능력만 있으면 다 용서가 되나 하는 것과 그래도 타인을 저버리지 않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두 가지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환상의 세계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진짜인만큼 양쪽 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위해 물러날 수 없는 것은 이해가 가요. 심지어 환상의 세계에서는 지구에서 온 인간이 괴물로 보이는 바람에 더욱 같은 인간과 싸운다는 감각이 없거든요. 그런데 지구 사람들에게 더 정이 가는 이유는 특히 푸니 조종자 중 한 명인 '세이코'라는 소녀 때문이에요. 세이코는 푸니가 막 나타난 초기에 고작 중학생이었는데 내성치가 높다는 이유로 정부에 차출되어 푸니 제거 활동에 나서거든요. 그전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과 새벽에 만난 달리기나 열심히 하던 애였는데ㅠ0ㅠ 그리고 활동 특전으로 좋은 고등학교에 무상 입학되니 동급생들이 좀 아니꼽게; 보는 바람에 학교도 포기하고 그냥 일만하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스스로 푸니를 먹기까지 하고ㅠ0ㅠ 작품 내에서는 그냥 뭔가 본인이 '본래 살 수도 있었던 평화로운 삶'에 대해 구체적이지도 않고 어설픈 상상밖에 못하는 그게 너무.. 너무..ㅠ0ㅠ 차라리 얘가 난 특별하니까 세상을 구해야지! 이런 성격이라도 되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그리고 또 인상 깊은 게 다른 푸니 조종자 리켄의 어머니였어요. 여기는 괴롭히는 다른 학생 때문에 강제로 푸니를 먹은 케이스인데, 사실 원만하게(?) 복수를 하고 싶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똑같이 푸니를 먹였으면 증거도 안 남았을 텐데 당장 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몰래 입수해둔 총으로 호쾌하게 쏘고 감옥으로 가는 게 너무ㅋㅋㅋㅋ 뭐랄까 종말 직전의 세상에서 복수는 스스로 한다는 게 좀 재미있더라고요. 이게 은근히 환상의 세계에서 보여준 행복하기만 한 가족의 모습과 그 이후 남자의 행동과도 대비된다고 해야 하나. 좀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