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이 료 <정욕>
朝井リョウ <正欲> 新潮社 / <정욕> 민경욱 옮김 리드비
아들이 등교 거부 중인 검사,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운 직장인, 남자의 시선이 무서운 대학생이 각자 소아성애자()와 얽히며 이만큼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다양성에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포용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 다양성에도 인정해서는 안 되는 제한선이 있는지, 제한선이 있다면 그것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지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과연 역겨운 인간상을 묘사하는 것에 뛰어난 작가답게 너무나 이상한 인간들로 넘쳐나는데 또 읽다보면 이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내가 판단해도 되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다른 얘기지만 저는 정말 귀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귀가 얇아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보면 진짜 잘 휩쓸리는 편이거든요.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이 각자 다양성이나 성적 취향에 대해 말하다 보니까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다가 또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이래서 내용도 복잡한데 다른 의미로도 읽기 힘들었어요. 전생 체험하면 황희 정승 나올 듯.
내용 중에 물성애자가 나오는데 이게 작가가 진짜 영리하게 잘 설정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이게 액체류라도 소변이나 구토;가 아니라 물이 뿜어져 나오는 거나 한꺼번에 촥 쏟아지는 등 아무튼 깨끗한 물이 나가는 모습에 흥분하는() 성향인데 사실 이것만 보면 딱히 나쁜 짓은 아니니까 저야 물을 보고 흥분하진 않지만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게 남과 얽히는 순간 완전히 무해하다고 말할 수 있나? 하는 걸 따져보지 않을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드라마처럼 컵에 든 물을 앞사람에게 촥 끼얹었는데 그 물의 궤적()을 보고 성적으로 흥분한다면 아무리 나는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이게 정말 괜찮은 건가? 혹시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면? 반대로 내가 무성애자 남성을 이성애적으로 좋아하는 시선을 보내는 건 그 사람에게 폭력적인 행동일까? 하는 내용이 계속 이어지니까 진짜 어느 순간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되더라고요. 결말 즈음에 저 직장인과 결혼한 동창과의 관계는 이걸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일까 싶으면서도 아이들을 이용한 부분에서 솔직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생각하니까 또 너무 혐오스럽고 이랬다 저랬다 난리라 끝까지 읽고 나니까 등장인물이 아니라 제가 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렇다고 또 이런 특수한 인물이 아니라 소위 '다수'에 속하는 '정상적'인 인물에게는 불안함이나 문제가 없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생 루트인 학교를 제대로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고 그런 것들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인생에 실패한 것 같을 때가 있고. 또 작품 전반에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는데 똑같이 마이너리티한 성적 취향이라도 물성애자;에 비해서는 같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더 폭넓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는데 외모 컴플렉스와 남성 공포증으로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성애자 여성은 어쨌든 세상의 다수에 속한 이성애자니까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람 앞에서는 불만도 표출하면 안 되는 것은 너무 불합리한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연호가 바뀌는 시기라는 막연히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키즈 유튜브에 대한 정책 변화 등 사회 변화가 잘 엮여 있어서 다양성이란 말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너무 좋은 작품 잘 읽었고요, 이제 누가 재미있다고 추천하면 무조건 빨리 봐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걸 메일로 받아서 읽으면 너무 한바가지일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쓰고 좀 더 차분히 곱씹어봐야 할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