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도착하는 날이면 선거일이네요. 저는 선거에 맞춰서 강아지를 넣을 앞가방을 샀답니다(?) 지금까지는 슬링백을 썼는데요, 이게 옆으로 메는 거라 저도 몸이 좀 기울어지고, 강아지(6.8kg)는 이제 좁아서 잘 안 들어가려고 하는 바람에 그냥 뒷다리만 살짝 넣은 형태로 제가 안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다녔거든요. 근데 이 앞가방은 그.. 백팩을 앞으로 멘 그 느낌이에요. 일단 제가 두 손이 다 프리하니까 넘 편하고 좋더라고요. 심지어 색도 베이지임...!
또 뮤지컬도 봤어요. 성규가 나오는 <디어 에반 핸슨>이에요. 사회불안장애가 있는 아이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학교 일진에게 빼앗겼는데 그 일진이 자살하는 바람에 편지로 유서를 남겼다는 오해가 생기며 그것에 맞추느라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는 내용이에요. 성규랑 신영숙 배우의 노래랑 연기는 다 좋고 눈물콧물 쏟긴 했는데 또 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그냥 ost나 내줬으면ㅠ0ㅠ
후지사키 쇼 <신의 이면>
藤崎翔 <神様の裏の顔> KADOKAWA/ <신의 숨겨진 얼굴> 김은모 옮김 엘릭시르
학생을 사랑하고 교육에 진심인 인격자 교사가 죽고 그 장례식이 열리면서 거기 모인 사람들의 시점에서 각각 서술되는 이야기에요. 인물들은 자기 입장에서 고인을 추모하는데 그러다 중간에 음? 하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떠올라요. 고인에게 아들이 너무 속을 썩여서 차라리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고 하니까 진짜 사고가 난다든가, 치매인 남편이 자꾸 밖을 배회해서 고생스러우니까 차라리 남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진짜 남편이 죽는다든가 하는 타이밍 좋게 고인에게 이야기하니 그게 현실이 되는 식이에요. 그래서 어쩌다 각자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야너두? 야나두! 요런 상태가 되어 각자 겪은 일은 모두 정황 증거밖에 없지만, 어느새 고인이 그 모든 범죄의 범인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사실 저 인격자였던 고인이 죽고 범인 취급을 당하는 건 서점에 올라온 줄거리 소개에도 나오는 거라 딱히 스포일러가 아니란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인이 진짜 범인이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누구나 존경받고 사랑받으며 완벽하게 보였던 인간이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흥분과 즐거움을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밝혀냈다는 우월감도 눈에 띄고요. 또한 그렇게 분위기에 휩쓸려 진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해요.
평소에 이미지가 좋지 않은 사람이 사고를 치면 그럴 만한 인간이지만 좀더 혐오스럽군.. 하고 대충 넘어가지만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아니 그 사람이 어쩌다?? 하면서 더 흥미롭다고 느끼는 건 사실이라 되도록이면 단정 짓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거든요. 사실 이제 인터넷에 막 수군거릴 기력도 없어서 행여나 악플 달았다고 신고당할 일은 없긴 한데() 암튼 그래서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우기는 걸 보면 한심하게 보이면서도 또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 완전히 남의 일 같지는 않다고 느꼈어요. 아 그래도 저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선을 긋고 싶기는 한데.
아무튼 이야기의 반전도 고인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신나게 파헤치던 다른 이들에게도 비밀은 있었다... 하면서 전개되는데 개인적으로 마지막 결말은 그냥 그랬어요. 진상을 너무 구구절절 설명해서 좀 사족 느낌이 나더라고요.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말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체코의 국민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어요. 쿤데라가 존경하는 작가라는데 쿤데라는 망명하여 체코를 떠났지만, 흐라발은 체코에 남아서 체코어로 글을 쓴 작가래요. 아무튼 저는 이 책을 출간 당시(2016년)에 샀고요() 지금 읽었어요; 하 인간아... 그냥 초록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멋있어서 샀던 책이에요. 뭔가 그 역설적인 표현이 주는 간지가 있잖아요.
아무튼 내용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체코에서 35년간 지하실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해온 한 남자의 독백이에요. 세상은 나치 정권이니 공산주의니 하면서 어떨 때는 왕정 시대의 책이 버려지고, 또 어떨 때는 시대에 따라 금서가 된 책이 버려져요. 남자는 그 책들을 차마 그냥 버리지 못하고 주워서 읽기도 하고 또 가치가 있다고 느낀 책은 집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당연히 업무를 관리하는 소장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남자를 타박하고, 지하실은 너무 환경이 열악해서 주변에는 쥐가 널려 있어요. 그런 곳에서 사랑하는 책을 폐지로 압축해야 하는 남자는 영혼만큼은 누구보다 풍성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것에 대한 혼잣말이 줄줄이 이어지는 책이에요.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일을 하던 남자에게 변화가 찾아오는데 바로 현대식 기계의 등장이에요.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책들을 그 새로운 기계에 버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남자는 큰 충격을 받게 돼요. 이 작품은 이렇게 남자의 고독한 사유와 시대의 변화가 맞물려서 독자에게도 철학적인 삶이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막상 읽고 나서는 아 내용 어렵다, 근데 여자 얘기는 무엇, 아니 그래도 맥주 너무 많이 마심 같은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안 했는데; 그 뒤로도 자꾸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결말도 어떻게 보면 예상대로긴 했는데 당연한 마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여기 남자의 대척점..까진 아닌데 옛 연인인 여자가 나오거든요. 학교 파티에서 열악한 화장실 탓에 드레스 끝자락에 대변이 묻었는데 빙글빙글 돌다가 주변에 흩뿌리는 참사ㅠ0ㅠ를 일으키며 창피한 일을 겪게 돼요. 근데 비슷한 사건이 후에 또 일어남...... 이렇게 여자 입장에서는 책으로 대표되는 교양과는 정반대의 일차원적인 사건을 연달아 겪거든요. 그런데도 여자는 끝까지 현실을 살아가요. 그리고 그 인생의 결과가 마지막에 남자의 인생과 대비되거든요. 진짜 상상만 해도 끔찍한 에피소드인데 '책 한 권 읽지 않으려고 했던' 여자의 결말을 보면 또 인생이란 정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미키 아키코의 <패자의 고백敗者の告白>입니다. 이것도 한 여성과 그 아들이 죽은 뒤, 각 인물의 시점에서 고백한 이야기를 조합하여 진상을 밝히는 내용이라고 해요. 전 또 이런 말 속에 숨겨진 모순 같은 건 잘 못 찾아서 그냥 뇌를 빼고 읽어야겠네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개인 메일로 발행하는 것이라 스팸으로 분류될 수 있으니 메일이 보이지 않으면 스팸함을 확인해주세요.
책에 대한 감상이나 추천 책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메일로 보내주세요. booksowner@soz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