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꼭 바쁜 일은 몰아서 생기는 것 같아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다 백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더스크우드라는 게임을 했거든요. 이것까지 하느라 진짜 맨날 네 시간씩밖에 못 잤는데 결말 진짜 하... 어떻게 보면 몰아서 끝낸 덕분에 그 후로 일에 집중할 수 있던 건 좋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결말 진짜... (심한 말)
미즈미 료 <마인드 이터> 완전판
水見稜 <マインドイーター> 東京創元社
인류를 위협하는 마인드 이터의 존재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룬 SF단편집이에요. 이름답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어 존재를 기괴하게 변형시키는 것인데 결정체가 되어 깨지기도 하고,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기도 하고 다양해요. 근데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고 독자가 추측하도록 되어 있어요. 다만 마인드 이터는 인간의 정신에 타격을 주어 변형시키는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소행성 등 광물의 형태를 지닌 것이라 이걸 살아 있는 존재가 의지를 갖고 공격하는지, 아니면 죽은 상태인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이 세계에는 마인드 이터를 파괴하는 헌터가 존재하는데, 이 세계에서는 헌터 역시 마인드 이터와 접촉한 탓에 마지막에는 결국 마인드 이터 증상이 나타나 사망하거든요. 근데 신기하게도 헌터의 가족이나 애인 등 감정적으로 끈끈하게 얽힌 사람 역시 같은 증세로 죽는다는 점에서 약간 사랑병? 같은 취급을 받는 점이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헌터가 죽었는데 애인이 멀쩡하면 관계를 의심받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애인이 죽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악질적인 헌터가 여성을 성폭행하며 마치 '죽을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뭐 이런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 굉장히 강하게 묘사되는 탓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그나마 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는데요;
그 뒤에 마인드 이터가 언어 장애인과 정신이 싱크로되며 언어가 탄생하는 묘사라든가 마인드 이터 증상이 드러난 사람이 무언가 노래를 부르며 정신이 붕괴되는 등 뭔가 인간의 정신적 바탕이 될 부분과 연관된 얘기를 할 때는 내가 읽는 것이 그냥... 글자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리고 단편 중에 일곱 살 먹은 엄청난 천재 소년이 옛날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집을 나가서 열두 살 난 여자애와 결혼()까지 하는데 소년이 어른처럼 말하는 그 묘사는 의도적으로 기분 나쁘고 그 와중에 밥은 또 여자애가 차리고 있는 그......... 음.......... 애를 찾아나선 아빠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오랜만에 집나간 아들 찾았으면 밥은 좀 어른인 네가 차려라 싶은 그런...........
마인드 이터라는 것은 거의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같은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체념이나 절망 같은 감정이 바닥에 깔려 있는 느낌이라 그 분위기는 좀 괜찮았는데 요즘 읽기에는 시기가 안 맞는 느낌이더라고요. 80년대나 그 이전에 출간된 고전 SF라면 아직까지 저한테 최고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인 것 같아요.
기타 미도리 <도시락 가게의 대접> 1권
喜多みどり <弁当屋さんのおもてなし> KADOKAWA
사내 연애를 하던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다른 동료와 바람 나서 결혼까지 하는 바람에 그 동료가 발령날 예정이었던 홋카이도로 쫓겨나듯이 떠나게 돼요. 실연의 아픔에 동료의 배신과 낯선 지역까지 겹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날을 보내던 주인공은 문득 한 도시락 가게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서 일하던 청년은 주인공의 주문과 다른 메뉴를 주면서 배려인지 오지랖인지 모를 간섭을 해와요. 처음엔 화가 났던 주인공도 막상 먹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은 몸에는 더 좋은 것이라서 이후로 도시락 가게를 애용하게 되고, 그 청년은 물론 주변인물과도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홋카이도에 적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보니까 시리즈가 10권도 넘더라고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거 같고. 대충 훑어보니까 이 주인공과 도시락 청년이 점점 가까워지나 봐요. 사실 1권부터 주인공은 완전히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좋아하는 티가 나서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거든요. 근데 뭐랄까 저의 기대와는 다르다고 해야 할까;
제가 처음에 기대했던 건 도시락 가게 시점에서 요리도 하고, 가게 준비도 하고, 그러다 오는 단골 손님 얘기도 들어주고 이런 거였거든요! 근데 이건 손님 시점에서 조금씩 도시락 가게 쪽과 가까워지는 형식이라 나름 신선한 맛은 있긴 한데 내가 생각한 음식 소설은 아닌 그런..? 1권만 찍먹해보길 잘한 것 같아요. 예전에 비슷하게 시리즈로 샀다가 망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는 절대 한꺼번에 안 사거든요ㅠ0ㅠ
아무튼 이런 종류의 소설이 다 그렇듯이 나오는 사람들도 정겹고 훈훈해서 그런 인간 극장 같은 면을 보고 싶으면 추천할게요! 저는 솔직히 인간은 관심 없고 계란말이 만드는 장면이나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라 그냥 그랬어요ㅠ0ㅠ 아니 도시락 가게가 배경이면 얼마나 프로답게 도시락 칸에 맞춰서 반찬 꽉꽉 넣는지 보여줘야 할 거 아니에요ㅠ0ㅠ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사에타카의 <늙어가는 애견과 보낸 소중한 나날 강아지 17세老いゆく愛犬と暮らしたかけがえのない日々 ワンコ17歳>라는 일러스트 에세이예요. 좀 빠듯한 일정을 보낸 뒤라 이번엔 페이지 수를 보고 골랐어요. 사실 살 때는 표지는 귀엽지만 이거 백퍼 눈물 나겠군.. 하면서 샀거든요. 지금 제목 쓰느라 앞부분만 잠깐 봤는데 시작부터 엄마 강아지 다리 사이에서 떠는 겁 많은 강아지부터 묘사하는 건 선 넘었지 진짜! 이 족굼한 애가 열일곱 살 됐다는 거잖아요 으허엉ㅠ0ㅠ 아무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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