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미 가즈마사 <이노센트 데이즈>
早見和真 <イノセントデイズ> 新潮文庫/<무죄의 죄> 박승후 옮김 비채
전 남친의 부인과 어린 두 딸을 방화로 살해한 죄로 사형을 앞둔 30세 여성 유키노의 삶을 나열하여 어떤 경위로 유키노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따라가고,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2부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에요. 각 장의 제목이 '책임감 없는 어린 엄마에게 태어나' '양부의 폭력에 시달려' 대충 이런 식으로 판사가 판결문을 읽을 때 나오는 그 말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가 흔히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묘사할 때 나오는 말이 붙어 있어요. 이미 구성부터 괴롭지 않나요ㅠ0ㅠ
지난번에 이어 또 얘기하지만 사형수가 나오면 사연 있는 범죄자거나 누명이나 자기 희생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범죄에 대한 진실 여부는 사실 초반에 이미 간접적..? 아니 직접적으로 알려주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유키노가 이런 상태가 된 과정에 있어요. 앞서 말한 '불우한 환경'이 범죄의 시발점이 되었다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 냈으면서 익명 뒤에 숨어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유키노가 죽기만 기다리는 가족, 친구, 애인 등의 주변 인물이야말로 죄가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어릴 때야 차치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남에게 의존만 하는 유키노는 정말 본인의 삶에 죄가 없는가? 그리고 뒤늦게 유키노를 구하러 나선 친구들의 행동은 정말 유키노를 위한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거예요.
유키노는 진짜 어릴 때부터 속된 말로 세상이 억까한다고 싶을 정도로 비극적인 인물이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은 다 겪는데요, 요코하마에서 물장사 하는 할머니의 남자로 한국인이 등장했을 때는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모 야쿠자 게임이 잠깐 생각나서 그 동네는 진짜 동양 조폭은 다 모이는 동네인가 하고 잠깐 유체이탈해서 생각했네요. 왜냐면 이렇게 굴러들어온 남자가 더 어린 여자애가 있으면 무슨 짓을 하는지 그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요...ㅠ0ㅠ
아무튼 위에 썼던 인물들의 문제 외에도 자수하여 진술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확신하는 사법 행태나 어린 소녀가 성장하며 꾸준히 폭력에 노출되어 왔는데 보호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 타인의 사정을 멋대로 단정짓고 보도하는 언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십처럼 소비하는 사람들 등을 서술해서 정말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작품이었어요.
특이한게 초반에 재판을 방청하는 게 취미인 여성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도관 시험까지 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 사람이 수감된 유키노를 꾸준히 관찰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과 실제 인간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무엇도 선입견을 갖고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것이 아마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아닐까 싶어요. |